알림
알림
알림메세지

eBOOK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저자제임스 S. 게일
  • 출판사책비
  • 출판년2019-03-1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4-30)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신고하기
신고하기
신고하기 정보 입력
  • 대출

    0/1
  • 예약

    0
  • 누적대출

    29
  • 추천

    0
  • 박물관에서 표지만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우리 역사의 흔적, 드디어 우리말 정식 출간!



    120년 전, 수십 년간 조선 땅에 살며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한 파란 눈의 한국학자가 쓴 우리가 잊고 지낸 역사의 기록



    1888년, 스물다섯 살의 한 선교사가 조선 땅에 입국했다. ‘제임스 S. 게일’이란 이름을 가진 파란 눈의 그는 사십여 년간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게일은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조선인들과 어우러지며 깊이 교류하였다. 특히 그는 조선의 마지막 10년이라 할 수 있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해당 원서는 서방 세계에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이다. 이미 여러 권 소개된 바 있는 게일의 다른 기독교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역사박물관’에 해당 원서의 초판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게일은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출간하였고,『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수많은 우리 고전과 조상들의 저서를 읽고 번역할 정도로 우리말에 능통하였다.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에 소개하였고, 역으로 『텬로력뎡(천로역정)』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그는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겼는데, 단군 조선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집대성해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껏 우리에게 게일은 선교사로서 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위대한 한국학자이다. 그런 그가 서양 세계에 미지의 나라인 ‘조선’을 처음으로 알린 책이 바로 본서이다. 게일은 이 책에서 그간 우리가 역사책으로만 접해온 ‘아관파천’, ‘을미사변’, ‘명성왕후 시해’ 등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의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는 이번 책은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은 듯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조선인보다 더욱 조선을 사랑한 파란 눈의 이방인,

    제임스 S. 게일은 누구인가?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

    한글명: 긔일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했던 사람.

    이 책은 역자 최재형이 우연한 기회로 발굴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역자가 이 위대한 한국학자의 존재와 그가 우리에 관해 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저서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역자는 지난 2006년,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본문 중 ‘한국인에 대하여 게일만큼 잘 아는 이는 없다’라는 문구가 발단이 되었다.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이 글을 쓴 이 책의 원제는 『Old Korea』로, 1919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인 자매가 몇 달 동안 머물며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엮어 1946년 서양에서 출간되었다. 평소에도 우리 문화와 역사에 관해 관심이 많던 역자는 대체 게일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평을 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는데, 게일은 단순히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삶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다.

    사실 한영사전이 우리나라 말고 다른 곳에서 먼저 나왔을 리가 없으니 세계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한영사전은 연세대학교 설립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창립자인 언더우드가 1890년 출간하였는데, 이 책 서문에 공저자로서 게일과 헐버트를 밝히고 있다. 게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897년 지접 자신의 이름으로 한영사전(한영자전, 최초의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증보판은 1967년 사무엘 마틴이 새한영사전(New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할 때까지 무려 70년간이나 그 독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번역 출간하였다.

    1895년 그는 영국 작가 John Bunyan의 『The Pilgrim’s Progress(1678)』를 순 우리말로 번역 출간하였는데, 1888년 이 땅에 발을 처음 내디딘 지 불과 7년 만에 번역서를 출간할 정도로 그는 우리말에 통달하였다. 또한 그는 세계 최초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 출간하였다. 청파 이륙의 『청파극담(1512)』과 수촌 임방의 『천예록』에 전하는 이야기(야담)를 모아 『Korean Folk Tales』라는 이름으로 1913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서포 김만중이 1687년 쓴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는 제목으로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심청전』과 『춘향전』도 번역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역한 『청파극담』이나 『천예록』 모두 한문본이고, 『구운몽』 또한 언문본(한글본)과 함께 한문본을 모두 참고해 번역할 만큼 그는 단순히 우리말(한글)에만 통달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정동에 모여 살던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서양인이 살지 않는 곳에서 조선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며, 사랑방에 앉아 한학을 공부했다.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그야말로 수많은 고전과 우리 조상의 저서를 읽고 번역했다.



    그는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서 너무도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원군을 만났고,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과도 알고 지냈다. 고종의 아들 의화군과 친구였고, 이범진, 박영효, 이상재 등 수많은 관리들과 밀접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위해 추천장을 써주기도 했다. 청일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고종의 고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날 고종을 알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였다. 오늘 출간되고 있는 많은 우리 역사서에서도 명성왕후 시해와 관련한 역사적 해석이 명확하지 않은데, 본 서에서 그리고 다른 기록으로 저자는 명성왕후 시해 직후 흘린 고종의 눈물과 울분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는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다.

    선교사이자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든, 누구보다 뛰어난 한국학자로서 그가 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이다. 여호와 혹은 신에 해당하는 호칭에 대해 천주, 상제를 주장하는 다른 선교사에 맞서 우리 문화와 언어에 더 깊은 이해가 있던 게일은 순 우리말이면서 기독교와 관계없이도, 이미 온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던 ‘하나님’을 주장하였고, 관철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긴 그는 진정한 한국학자였다.

    그의 이름 뒤에 ‘목사’라는 호칭이 붙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단순히 선교사 또는 목사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사십 권이 넘는 국영문 저서를 출간하고, 이 땅과 이 땅의 사람에 관한 수백 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긴 대학자이다. 이미 1895년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 역사를 서양에 소개했고, 단군 조선에서 삼국시대, 고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였다. 그는 이 연구와 집필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우리 선조들의 역사서를 직접 읽었고, 현장을 답사했으며, 우리 역사와 관계있는 중국 역사는 물론 불교, 유교, 도교 등의 사상사까지 직접 연구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낯선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우리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출간한 최초의 저서이다.



    1888-1897, 격동의 시간 속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역사책에서만 들어본 우리 역사 속에 제임스 S. 게일, 그가 있었다!”



    ●· 조선 사람들의 삶과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책

    이 책의 저자 제임스 S. 게일은 1888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선교자의 신분으로 부산항을 통해 조선 땅에 도착했다. 이후 사십여 년간 조선인과 깊이 교류하며 조선인들의 삶과 문화, 사고방식을 면밀히 관찰하여 기록하였고,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간의 이야기를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1898년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그때까지 조선은 서양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다.



    지금까지 조선 사람들의 삶과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독특하고 예스러운 민족과 약 9년간의 친밀한 교제 후에 나는 이들에 대한 단상을 여기에 모았다. 이를 통해 이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오랜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조선이라는 왕국에 사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할 수 있기를!

    _ ‘머리말’



    게일은 이 책에서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접한,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와 조선인들이 시체를 처리하고 장례 지내는 방식의 묘사, 밤새 통구이가 되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아궁이를 지피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런 통 넓은 바지와 소매의 복장, 계란 한 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풀로만 가득한 밥상, 나라의 희망이자 전부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상놈’에 대한 상세한 소개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상세한 설명과 해학으로, 마치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의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접할 법한 조선 시대 이야기를, 그 시대에 진짜 존재했던, 누구보다 그 삶을 가까이 경험한 120년 전의 인물에게서 전해 듣는 것이다. ‘은자의 나라’라 불리던 미지 속의 조선을 최초로 서양 세계에 소개한 이 책은, 놀랍도록 세밀한 기록이기에 비록 최초 출간 당시의 주 독자층은 서양인들이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 조선 방방곡곡을 여행한 최초의 이방인

    게일은 이 책에서 그 어떤 외국인도 조선에서 자신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진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서양인 중 누구도 압록강 동쪽 지역을 여행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는 부산으로 입국해 서울, 해주, 장연, 제물포, 개성, 평안, 의주를 거쳐 중국의 만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여행하였고, 이 책 곳곳에 그 시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을 적어놓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여행 기간 동안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과 혹독한 야생을 온몸으로 느꼈고, 신분을 막론한 여러 조선인들과 뜻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가 조선에 막 발을 들여놓은 직후부터 보고 듣고 느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조선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은, 어느덧 그에게 친근하고 따듯한 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책이 중후반을 향해 갈수록, 조선과 조선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각과 생각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또한 그는 조선이 일본에게 잠식되어 가는 그 과정과 순간들을 목격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가슴 아파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조선을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다. 나에게 조선이란 전 세계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나라인데, 좋은 날씨에, 점잖고 신의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하며, 그네들의 말과 오랜 풍습은 아주 흥미로운 데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지천에 널려 있다.

    - P.178~179



    ●· 아관파천, 청일전쟁, 갑신정변, 을미사변… 우리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게일은 지금의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굵직굵직한 역사의 사건들 속에 생생히 자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목도한 이야기들은 이 책 곳곳에 서술되어 있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난다. 본인이 직접 평양에서 목격한 일본군과 중국군들, 청일전쟁의 흔적, 긴박했던 아관파천의 뒷이야기,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을 논하며 격앙된 어조로 일본을 비난하는 등, 게일은 파란 눈의 이방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조선에 스며들어 우리 조상들이 겪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이 책에 기록하였다. 120년 전 조선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부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사건까지, 우리는 그 시대를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책 속으로















    이곳에 대한 여러 첫인상 중, 나가사키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배 위에서 조선 사람들의 흰 옷과 통 넓은 바지를 보고 경악했던 것이 떠오른다. 왜 저런 옷을? 그리고 저 상투는 또 뭐지? 잠깐 사이 내 머릿속에는 ‘아마 저들은 저 상투를 아주 중시하나 보다’, ‘그 통 넓은 바지 솔기마다 한 땀 한 땀 조상님들의 은덕을 새겼나?’, ‘아니면 유교식 예절이거나 오랜 전통인가?’, ‘바지통이 넓을수록 소원이 이뤄지는 걸까?’ 등등, 바지통이 저렇게 넓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 P.17



    마침내 우리는 환상의 세계처럼 신비로움에 휩싸여 있는 그곳, 서울에 도착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서울은 동방에서 가장 그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사실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할 것투성이였다. 잔인한 인종이지는 않을까 하고 상상해오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사람들은 어진 품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 동방 전체에 만연한 소름 끼치는 관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처음 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공포로 몰아넣는 것인데, 바로 온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예를 갖추어 시신을 매장하고, 고인의 부활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한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시신을 자리에 둘둘 말아 그대로 익어 썩어가도록 햇볕 아래에다 방치한다.

    - P.20~21



    생전 본 적 없는 엄청난 수의 개와 벌거숭이 아이들. 아이들은 내가 다가가기 무섭게 달아났지만 개들은 아니었다. 목을 곧추세우고 눈을 부라리며 대문 앞에서 나를 위협하거나, 대나무 울 뒤에서 으르렁거리며 짖어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선말을 동원하여 이렇게 말했다.

    “오, 이런! 안 씨, 도대체 이 수많은 개들을 왜 죽이지 않는 거죠?”

    “아직 너무 일러요, 나중에 죽일 거예요.” 안 씨가 대답했다.

    “아니, 나중에 말고 지금이요. 지금 개를 잡으면 바로 마을이 평화롭고 조용해지잖아요?”

    “지금이라……. 아시다시피 봄에는 개고기가 별로 좋지 않아요. 여름까지 기다렸다 잡아야죠. 당신 나라에선 봄에 개고기를 먹어요?”

    “으악, 아니요!”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언제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를 먹는 죄악은 절대 저지르고 싶지 않아요.”

    “아예 안 먹어요?” 그가 또 물었다.

    “절대로요! 우리나라에선 절대.”

    곧이어 안 씨의 얼굴에 참 덜 떨어진 족속이구나, 하고 우리를 생각하는 표정이 뒤따랐다.

    - P.36~37



    잠시 생각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봐놨다는 안 씨의 목소리를 듣고야 정신이 들었다. 방은 길이 4미터에 폭 2.4미터, 높이는 1.8미터 정도 되었는데, 마을에 묵을 수 있는 방이 얼마 없다며 안 씨는 자신과 친구 한둘이 같이 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친구? 누구요?”

    “최 씨, 서 씨, 이 씨하고, 몇 명 더요.”

    이 답답한 방에서 이렇게 많은 조선 사람들과 함께 자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연히 모셔 와야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방 한쪽 끝에 새로 짠 자리를 깔았는데 꽤 좋아 보였다. 자러 온 사람들이 일렬로 몸을 눕힐 때까지 나는 앉아서 기다렸고, 안 씨는 호랑이를 대비해 문과 창문을 철저히 단속했다.

    자리에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agungi(아궁이)에 불을 엄청나게 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방바닥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잠시 뒤 나는 안 씨를 흔들어 깨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아니, 날이 이렇게 따뜻한데 불을 왜 이렇게 때는 거예요? 나 죽어서 통구이 되는 거 보려고 이래요?”

    잠이 아직 덜 깼던 안 씨는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정신을 차리느라 몇 분 보내더니, 자기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이 집 안주인이 불을 땐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내가 해결할 테니.”

    안 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람들을 다 깨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궁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윗목의 쌀가마니들 사이에 자리를 최대한 겹쳐 쌓아 내 잠자리를 봐준 다음, 조선 사람들은 이 정도는 뜨끈뜨끈해야 편하게 잘 잔다며 나머지 사람들을 다 뜨거운 아랫목으로 몰아넣었다.

    다음 날 아침 어렴풋이 잠에서 깼는데 숨이 꽉 막히는 것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머리는 터질 듯한 데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분간이 안 되었다. 나는 엄청 끙끙대며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겨우 일어나 앉았고, 그제야 대충 주변을 분간할 수 있었다.

    - P.52~54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자신들의 풍습을 따르려는 상놈의 곧은 마음을 깨뜨릴 수는 없다. 이들은 돈이 편리함을 주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없으면 안 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꼭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조건들이 만족스러우면 하겠다고 할 것이고, 어떤 때는 돈을 좀 더 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주면 또, 당신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은 절대로 순수하게 돈에 의해서만 종속되는 관계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일이 끝난 후 우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아주 약간의 성의 표시만 해주어도,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이들은 기꺼이 달려올 것이다. 순수하게 당신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만약 사이가 좀 틀어지게 되면 그는 돈을 더 달라고 할 것이고, 반대로 친분이 아주 돈독하면 적게 줘도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잘못되어 관계가 파탄이라도 난다면 당신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절대 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온 마을 전체가 당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 P.85



    저녁은 김치 냄새, 국 냄새와 함께 그것을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외국인이 보통 ‘개’라고 부를 길게 찢은 고기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왔다. 그것은 너무나 기다리던 냄새였기에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남 서방은 “진지 맛있게 드시라.” 하고는 물러갔다. 노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만약 내가 가진 재물에 어떠한 탐욕도 품지 않았다면 그는 진정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이었다. 보통 그런 상황에 있는 동양인들은 겉으로는 아첨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조상님이 굽어 살펴주시는 나는 이렇게 굶주리고 있는데, 저 양놈 개새끼는 이 땅에서 제일 좋은 걸 처먹는다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프라이팬 방바닥 위에서 잠을 잤고, 거의 새까맣게 구워졌다. 그러고 보면 이 온돌바닥은 모든 조선 사람의 기쁨이었다. 우리가 이들의 잠자는 방식에 불만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조선 사람들도 서양식 잠자리를 뒤떨어진 미개인들의 형편없는 문화라고 여겼으므로 우리처럼 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P.145



    조선 사람들의 방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대체 무슨 냄새일까 알아내려고 몇 달 동안이나 애를 썼다. 어딜 가든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마침내 냄새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건 두 냄새가 합쳐진 것인데, 하나는 구석에서 타닥타닥 타고 있는 아주까리기름 냄새였고, 다른 하나는 일렬로 천장에 매달려 곰팡이를 피우고 있는 콩 덩어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겨우내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쓴 이 콩 덩어리111는 발효가 될 때까지 물에 담가놓았는데, 진액이 흘러나오면 끓여 간장을 만들었다.

    - P.177



    조선 사람들의 숫자 계산법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는데, 나는 장사치에게 한번 이렇게 물었던 생각이 난다.

    “이 자리 얼마예요?”

    “오백 푼이요.”

    “좋아요, 스무 개 주세요.”

    “말도 안 돼요!” 장사치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양은 육백 푼 밑으로는 못 팔아요.”

    이곳에선 산수라는 놈이 파멸하여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인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들의 나이 계산법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여서, 나이 먹는 걸 태양이나 달의 절기에 근거하여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설날 떡국을 몇 번 먹었느냐로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아기가 만약 12월에 태어나서 설날에 차례를 드리기 위해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면, 아기는 벌써 두 살이었다. 실제로는 태어난 지 오륙 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말이다.

    -P.209
지원단말기

PC : Window 7 OS 이상

스마트기기 : IOS 8.0 이상, Android 4.1 이상
  (play store 또는 app store를 통해 이용 가능)

전용단말기 : B-815, B-612만 지원 됩니다.
★찜 하기를 선택하면 ‘찜 한 도서’ 목록만 추려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