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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화랑 이야기

화랑 이야기
  • 저자황순종
  • 출판사인문서원
  • 출판년2017-01-2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3-31)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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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아름다운 고대 청년들의 삶은 어땠을까?



    천년왕국 신라인들의 분방한 삶과 사랑,

    그리고 풍류가 천년의 시공을 넘어 되살아난다!



    천 년 전 역사의 한 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한 아름다운 남자들의 집단이 있었다. 천년왕국 신라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그들의 이름은 화랑.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시대를 종식시키고 발해와 더불어 남북국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신라사의 최전선에서 장군으로, 재상으로, 충신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그 남자들은 각자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집단, 화랑의 이름으로 후세에 남았다.

    화랑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는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다. 『화랑세기』는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가계 중심으로 왕족과 골품 귀족들의 복잡한 계보와 분방한 삶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 유명한 화랑들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화랑 이야기』는 이들 세 가지 문헌에 기록된 40여 명의 화랑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가계를 통해 신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청년 엘리트 집단 화랑과 그들을 둘러싼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의 분방한 삶과 사랑,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풍류를 조명함으로써 고대 신라 사회를 재구성하는 책이다.

    섬세한 사다함에서 채식주의자 보종까지,

    신라 청년들의 ‘캐릭터 열전’



    화랑제도는 23대 법흥대왕 때부터 30대 문무대왕 때까지 약 170년 동안 존속한 제도이다. 화랑의 기원은 여자를 우두머리로 삼았던 원화인데, 이 원화 자리를 놓고 질투로 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남자를 우두머리(풍월주)로 삼는 화랑제도를 만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화랑이라는 이름 역시 1세 풍월주인 위화(魏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랑은 신라 지배층에 새로운 인재를 공급하는 인재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화랑’은 당시의 정치적 · 사회적인 상황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좋은 키워드가 될 수 있다.

    본문은 1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풍월주 32명, 2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화랑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사다함에서 김유신, 김춘추 등 기라성 같은 신라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유명인들이 화랑이자 풍월주 출신이다.

    『화랑 이야기』에는 관창이나 유신, 춘추 등 유명한 화랑들 이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화랑들의 면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눈이 맞은 부하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아 요절한 섬세하고 다감한 사다함(5세 풍월주), 낮은 신분이었으나 오로지 실력만으로 풍월주까지 오르고 고귀한 신분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여 백년해로한 문노(8세 풍월주), 콩죽을 먹고 고기를 즐기지 않았던, 말하자면 채식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신라판 르네상스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가졌던 보종(16세 풍월주)과 같은 화랑들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는 ‘캐릭터 열전’으로도 읽을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보자. 역사 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미실에게는 남동생 미생이 있었다. 미생은 12살에 사다함의 낭도가 되었는데 사실은 권력자인 누나 미실이 ‘함량 미달’인 동생을 밀어넣은 것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부정입학’을 시킨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랑이 되기는 했으나 미생은 말에 올라타지도 못했던 것이다. 당시 풍월주(미진부)는 미생을 쫓아내려 했으나 미실이 강경하게 반대한다.



    미실이 미생에게 명하여 사다함의 낭도가 되었다. 그때 미생의 나이 12살이었는데 말에 올라타지 못했다. 미진부가 쫓아내려 하자 미실이 반대했다.

    “어찌 내 아우를 한 번에 내칩니까?”

    사다함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문노가 이를 꾸짖었다.

    “낭도가 되려는 자가 힘으로 말에 오르지도 못하고 검을 쓰지도 못한다면 하루아침에 일을 당할 때 어디에 쓸 것인가?”

    사다함이 절하여 미생을 두둔했다.

    “미생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게다가 춤을 잘 추어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가하지 않겠습니까?”

    문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으나 미생은 검도를 좋아하지 않고 내심 문노를 꺼려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사다함은 난처했으나 방도가 없었다. (본문 90쪽에서)



    예나 지금이나 치열한 자기검열 없는 권력자는 비리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이며,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씁쓸한 에피소드다. 이밖에도 왕통과 권력을 둘러싼 삼각쟁투, 알콩달콩하는 부부 이야기도 나온다. 열세 살 소년 화랑 보리는 일곱 살짜리 신부 만룡과 혼례를 치른 다음, 꼬마 신부를 업고 어화둥둥하며 태후와 대왕에게 인사를 가고, 유신(김유신 장군)의 동생 흠순은 술독에 빠진 뱀을 보고 놀란 아내 보단을 다락에서 업고 내려올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젊었을 적에 흠순은 술을 좋아하여 보단이 직접 술을 빚어 다락 위에 두고 대령했다. 어느 날, 그날도 흠순이 술을 찾자 보단이 다락으로 올라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흠순이 다락에 올라가보니 큰 뱀이 술독에 들어가 취해 있고 놀란 보단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흠순은 부인을 업고 내려왔고, 이후 두 번 다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보리가 이를 듣고 말했다.

    “처를 사랑함이 이와 같으면 둘째 딸을 주어도 좋다.”

    그래서 보단의 누이동생 이단을 또 흠순에게 시집보내 세 딸과 두 아들을 낳았다. 자매가 한 지아비를 섬긴 까닭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기색이 없었다. (본문 170~171쪽)



    음란과 문란 사이,

    독특한 혼인 풍습 너머의 풍경을 훔쳐보다



    앞에 인용한 본문에는 현대인이 화들짝 놀랄 만한 대목이 버젓이 나온다. “자매가 한 지아비를 섬긴 까닭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기색이 없었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화랑세기』에는 현대인인 우리 눈에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들도 많이 있다.”고 미리 경고(?)를 하고 있다. ‘충격적인 내용’이란 고대 신라인들의 독특한 혼인풍습이다. 기본적으로 신라의 혼인제도는 일부일처제였지만, 신국(신라는 기본적으로 신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신국’을 자처했다)의 특성상 대왕을 위시한 왕족이나 귀족들은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로서 정실부인이나 남편 외에 다른 부인이나 남편들을 두었다. 친족혼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면은 오늘날의 유교적 · 기독교적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문란하거나 음란한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관습이었다. 사회적 제도나 윤리적인 규범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르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현대인의 편견’을 버리고 진솔한 신라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다면 『화랑 이야기』는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재미있는 또 하나의 역사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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